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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추진한 두산그룹 재편, 결국 포기

laissezfaire 2024. 12. 21. 09:20

 

 

두산그룹 사업재편 추진 일지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안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를 인적분할한 뒤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고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였던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두는 재편안을 추진해 왔었는데요. 

소액주주 반대에 부딪히고 금감원의 정정신고서 요구로 굴곡을 많이 겪었어요.

 

그간 추진해왔던 걸 살펴보면 

지난 7월에 처음 그룹 재편안 발표했었는데요. 

원래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떼어내고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밥캣을 두산로보틱스와 완전 합병하는 방안이었어요. 

 

그런데 밥캣은 연간 영업이익 1조원에 달하는 캐시카우인데

이런 두산밥캣 1주를 아직 영업적자인 로보틱스 주식 0.6주로 바꿔주는

주식교환을 하자고 하니 일단 두산밥캣 주주들이 극대노. 

 

두산에너빌리티도 주주들이 자회사인 두산밥캣 보고 투자한 건데

이걸 떼어서 로보틱스에 보낸다고? 알짜를 빼가는 건데? 이쪽도 극대노.

 

이 재편을 통해 이득을 얻는 쪽은 결국 오너그룹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어요. 

두산그룹 내 이익 97%를 밥캣이 책임지고 있는데요

두산 오너 일가는 이렇게 사업을 재편하면

그룹내 가장 알짜인 밥캣에 대해

실질 지배력을 14%에서 42%로 높이고

밥캣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잠재적 배당 수익도 그만큼 높아지는 거죠. 

 

그러니 코리아디스카운트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됐고

이사의 의무에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법개정안 논의에 불이 붙기도 했어요. 

 

이미지=이데일리

한번 철회했다 재수 나선 두산그룹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정정신고서 요구하고 하니

일단 철회했다가 지난 10월에 조건을 좀 바꿔서 다시 재편안을 내놨어요. 

 

밥캣과 로보틱스 합병안은 포기하고

밥캣을 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하는 안을 추진한 거죠.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의 합병비율도

기존에는 1대 0.031에서 1대 0.043으로 조정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의 경우

기존에는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 주식 75.3주와

두산로보틱스 3.15주를 받는 거였는데

 

이 조정안에 따라

두산에너빌러티 88.5주와 두산로보틱스 주식 4.33주를 받는 것으로 변경된 거예요. 

 

주주들에게 최대한 많은 주식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분할합병 비율을 변경했다는게 두산그룹 설명이었어요. 

단순 환산하면 100주 보유하고 있을 때 기존안보다 39만 원 늘어난 수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오는 12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합병기일인 내년 1월31일까지 사업 개편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습니다. 

 

문제는 분할 합병이기 때문에 주총 특별결의사항이에요. 

전체 주주의 3분의 1 이상이 참석하고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 필요합니다. 

 

의결권 자문사나 행동주의 펀드 엇갈린 입장

 

찬성과 반대로 엇갈리긴 했는데 대체로는 반대 의견이 더 많긴 했어요. 

 

찬성

 

상장사협의회 지배구조자문위원회, 한국ESG기준원, 한국ESG연구소,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는 찬성 의견이었어요

 

찬성한 쪽은 두산그룹의 경쟁력 강화 측면에 좀 더 무게를 두고 봤어요. 

 

분할합병을 통해 에너빌리티는 에너지사업 전문성을 확보하고

로보틱스는 스마트머신 경쟁력 극대화하면

장기적으로 양사의 기업가치는 높아지지 않겠냐는 논리예요. 

 

그리고 처음 제시했던 개편안에 비해

두 번째는 소액주주 이익을 좀 더 고려하지 않았냐.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주는 기존에 비해

새로 분할해서 신설되는 에너빌리티 법인 주식과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더 받을 수 있게 되지 않았냐

이 정도면 찬성할만 하지 않냐는 거죠. 

 

분할합병 비율도 공정가치 논란이 있었는데

일반주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합병비율을 재산정했고

이걸 외부평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공정성도 확보했다 이런 주장이었습니다. 

 

반대

 

반면 서스틴베스트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반대를 권고했어요. 

 

두산밥캣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는 이유에서 에요. 

두산밥캣, 그룹사 이익 97%를 책입지는 이 회사를

에너빌리티에서 로보틱스로 옮기는데

이 두산밥캣의 밸류가 이거 밖에 안되냐는 거죠.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도 적극 반대했는데 

얼라인은 두산밥캣 주당 가치를 

순차입금, 비영업자산, 상각전 영업이익(에비타) 등을 고려했을 때

13만 원 정도인데 두산은 7만 원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얼라인은 두산그룹에 분할합병을 철회하고

공개경쟁입찰을 통한 두산밥캣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주주 서한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러니 두산밥캣 지분 46.06%를 공개경쟁입찰로 매각하면

두산에너빌리티가 더 높은 대가를 받을 수 있고

사업재편의 이유로 밝힌 에너지 사업에 대한 투자금 마련 목적에도 더 부합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두산로보틱스에 두산밥캣 지배지분을 넘기는 것은

두산에너빌리티의 핵심 자산을 특수관계인에게 염가에 처분하는 것이고

이사로서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국민연금 사실상 기권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주총에서 분할합병 관련 안건이 통과돼야 하는데

두산로보틱스 주총에서는 두산이 68.2%의 지분을 들고 있어서 

다른 주주들이 반대해도 주총 통과가 가능했습니다. 

 

문제는 두산에너빌리티.

최대주주인 두산과 특수관계자 지분율이 30.67%에 그쳐

추가 찬성을 얻어내야 가능했거든요. 

국민연금이 6.85% 보유하고 있으니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셈이었죠.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위원회까지 열어서 의결권 행사방향을 논의했는데 

10일 주가가 주식매수예정가액보다 높은 경우 찬성. 아니면 기권.

 

이미지=이데일리

 

왜 10일이었냐면 합병 반대 의사 통지 마감 하루 전날이었거든요. 

주식매수 청구권을 염두에 뒀던 겁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합병 회사의 주주는 회사에 대해

주주총회 전 합병 반대 의사를 통지할 수 있고,

그러면 회사는 주식 매수 예정가액으로 주주들의 주식을 사줘야 합니다. 

주주들은 주총 표결때 기권이나 반대를 표시해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할 수 있어요. 

 

주식 매수 예정가액은 두산에너빌리티가 2만 890원, 두산로보틱스가 8만 472원

 

국민연금이 이렇게 결정한 건 결국은 시장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

왜냐하면 주식매수 예정가격보다 현재 주가가 높다는 건

시장이 분할합병을 좋게 생각한다는 뜻이고

밑돈다는 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을 보기도 한 거죠. 

 

그래서 12월 10일 두산에너빌리티의 종가에 시선이 쏠렸는데

10일 에너빌리티 종가는 1만 7180원이었어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을 한참 밑도는. 

 

하필 계엄령이…울고싶은 두산그룹

 

사실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요. 

원전 수주 모멘텀 때문에 하반기 원전 관련주 엄청 떴거든요. 

 

그런데 예상치 않았던 변수가 발생했잖아요.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 선포, 후에 해제되긴 했지만

탄핵정국으로 접어들었어요. 

 

그러면서 원자력 관련주 주가가 급락.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도 쭉 미끄러졌고 

두산로보틱스도 함께 급락했어요.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원전사업에 대한 기대감에

11월 19일 2만 2800원까지 올랐었거든요. 

비상계엄 직전인 3일만 해도 2만 1150원이어서

주식매수청구가격 웃돌았는데

비상계엄 선언 이튿날에 2만 원 밑으로 떨어졌고

1만 7000원대까지 밀린 거죠. 

 

결국은 사업재편 포기한 두산그룹

 

주총 특별결의도 그렇지만

주식매수청구권이 너무 많이 들어올 경우 자금부담도 감안해야 해.

 

증권신고서를 보면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규모가 6000억 원을 넘으면

분할합병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이 6000억 원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분할합병에 성공하면

가스터빈이나 소형모듈원자로 등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금액이기도 해요. 

 

국민연금과 소액주주가 행사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이

전체 지분의 4.5% 이상이 되면 매수대금 상한을 넘어서게 됩니다. 

 

두산로보틱스는 주식매수청구권 규모 상한선이 5000억 원이에요. 

로보틱스는 주식매수청구 행사할 가능성이 더 높았어요. 

당시 주가가 5만 원대인데 8만 원 좀 넘는 가격에 팔 수 있으니

소액주주들은 무조건 행사하겠죠. 

 

두산그룹은 결구 임시 주주총회를 취소했고

사업 재편안도 일단은 접었습니다. 

갑자기 계엄령 선포와 찾아온 탄핵정국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 사례로 거론됐던 만큼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그리고 힘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게 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