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보고 있으면 여론전도 이런 여론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진짜 치열한데요. 양측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보도자료 내면서 문제제기하면 반박하고, 거기에 또 반박하는 식으로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 끝난 다음날인 19일 바로 MBK가 기자간담회를 했고, 24일에는 고려아연이 기자간담회를 열었어요. 11시부터 시작했는데 이날 아침 9시쯤 MBK 입장문 내서 그간 MBK를 반대해 온 고려아연의 이사회와 노조, 협력사가 제시한 논리를 하나하나 달래듯 다짐성 내용을 발표합니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사람이 중요하다, 신성장 사업 지지한다, 지역사회와 협력하겠다, 협력사와 고객사 중요하다, 고려아연 국가기간산업이다, 주주이익 환원에 최선을 다하겠다, 이렇게 5가지였고요.
공개매수 선언 초반에 제기됐던 것 중에 MBK가 중국계 자본이다, MBK가 인수하면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 이런 논란은 MBK가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해명하면서 좀 누그러진 듯 한데 그 이후에도 여러가지 쟁점이 계속 발생하고 있네요.
크게는 고려아연의 재무상태, 이사회의 역할, 최씨 일가 우호지분 확보. 이렇게 세 가지 정도 같습니다.
MBK가 19일 기자간담회 했을때 재무상태에 대한 우려를 표했는데 영풍과 MBK가 경영권을 가져와야한다는 논리 중 하나로 제시한 게 바로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고려아연 부채가 너무 과도해져서 큰일난다" 였어요.
2019년 고려아연의 순현금 규모가 2조 5000억 원이었는데올해 예정된 현금지출을 모두 했을 경우 연말에는 마이너스 440억 원, 순부채로 전환될 예정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현금보다 부채가 더 많아서 빚진 상태가 된다는 것.
여기에 고려아연은 바로 반박자료 냅니다. "아니다, 연말에 순차입금 상태가 되지는 않을 거거든? MBK가 현금성 자산을 계산할 때 빠르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은 제외하고,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 갖고 계산해서 유동성을 일부로 적게 보이게 한 거라고" 주장했어요.
올해 상반기말 연결 기준 현금이 2조 1300억 원, 총차입금은 1조 3300억 원 정도라서 차입금 전부 상환해도 8000억 원 가까운 현금이 남는다는 게 고려아연의 설명이에요.
여기에 MBK가 다시 반박자료 내서 얘기한 게 "그건 6월 말 기준이고! 올해 하반기 호주 풍력발전소, 그리고 캐터맨 투자금 잔액 내야 하고중간 배당으로 배당금 나가야 하고올해 3월부터 자사주 매입 나섰는데 그게 총 55005500억 원 규모라서 이 자사주 매입 이어지면 결국 현금 모자라잖아"라고요.
MBK파트너스는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대표로 취임한 2019년 이후 고려아연 부채는 410억 원에서 1조 4110억 원으로 35배 정도 늘었는데 그 사이에 집행한 투자 38건 중에 30건에서 손실이 나고 있다고 지적했어요.
사실 고려아연의 현금성 자산이 줄어든 건 투자 때문이에요. 미래 먹거리 발굴 차원에서 비철금속 제련은 물론이고 이차전지소재, 신재생에너지, 리사이클링 등에 투자했거든요. 이건 "참 잘했어요"
사실 무차입 경영이 무조건 좋다고만 볼 수는 없어요. 성장을 위해 투자할 곳이 있으면 적극 투자해야죠. 레버리지를 일으켜서라도.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자산을 증식하려면 때론 레버리지를 잘 활용해야 해요. 그래야 빨리 자산을 키울 수 있어요.
고려아연이 투자한 대상을 보면 올해 상반기에 고철 스크랩 트레이딩 업체인 캐터맨 메탈스 인수했고 호주 풍력발전소 맥킨타이어 지분도 인수했고요. 인천 송도 연구개발센터 설립에도 투자했어요.
다행히 고려아연 현금창출력이 좋아서 이 정도 빚낸 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올해 상반기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5700억 원 정도 순 유입이었고요. 이건 전년 마이너스였는데 플러스로 전환한 겁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플러스라는 건
본업에서 제품 제조, 판매해서 돈을 제대로 벌고 있다는 뜻이고 이렇게 돈을 벌면 그걸로 빚 갚으면 되니까요.
상반기 EBITDA는 4500억 원 정도로 전년동기대비 40% 증가했고요. EBITDA 마진도 8.9%에서 11.8%로 개선됐으니 수익성도 상반기엔 개선됐습니다.
그래서 고려아연의 부채 수준이나 현금 수준이 걱정할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
고려아연 사외이사들이 주말인 21일에 입장문 내서 MBK와 영풍의 공개매수를 반대한다고 선언했어요. 차라리 안 내는 게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 성명서.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 기능에 대해 트집 잡을 빌미를 제공한 거라고 봐요.
사외이사들이 제시한 이유는 고려아연이 그동안 제시했던 논리와 똑같아요. 고려아연에 대해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거라고 규정했고요. MBK가 들어오면 사모펀드 속상상 핵심자산 매각하고 인력 구조조정하고 결국 고려아연 구성원, 지역사회, 이해관계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논리.
"현 경영진이 오랫동안 고려아연을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도록 이끌어왔다" 하면서 최 씨 일가를 지지하는 의사를 밝혀.
성명서 내니까 MBK가 바로 "거봐라. 이사회가 저렇게 전원 성명서를 내는 게 이사회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증거다"라고 바로 반박했어요.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했으면 원아시아파트너스에 5500억 원 출자하거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정에 활용된 하바나 1호 투자, 완전자본잠식인 이그니오 홀딩스를 58005800억 원에 인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건데요.
고려아연 사외이사 중에는 원아시아파트너스 지창배 대표가 운영했던 청호컴넷에서 사외이사를 했던 K대 교수도 있어서 이런 인적구성으로 사외이사들이 최윤범 회장에 대한 견제가 가능했겠냐 지적이 나올만하죠.
심지어 원아시아에 5500억 원의 고려아연 자금 투자할 때이사회 결의를 받지 않고 집행했다고 하니 우리나라 이사회는 거수기라는 오명이 고려아연에도 적용된 듯.
원아시아 펀드에서 손실
MBK가 최윤범 회장의 경영자로서의 자질에 있어서 줄기차게 물고 늘어지는 부분이 바로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손실인데요.
최윤범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게 2019년 3월인데 원아시아는 2019년 6월에 설립된 신설 펀드예요. 원아시아는 당시에 트랙레코드가 있었던 회사도 아닌데 원아시아가 운용하는 8개 펀드 출자금 80~90% 이상이 고려아연 출자금이에요. 사실상 고려아연이 자금을 댄 거죠.
문제는 원아시아파트너스 8개 펀드 중 4개 투자건에서 손상차손이 발생했는데 MBK는 원아시아 투자 대비 총손실을 24.8%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왜 최윤범 회장은 트랙레코드도 없는 신생 투자사에 본인 돈도 아니고 회사 돈 거액을 투자했을까요. 지창배 원아시아 대표가 최 회장의 중학교 동창이라서 친분으로 투자한 거 아니냐는 논란이 있고요.
이그니오홀딩스에 투자할 때에도 이사회에 이 회사에 대한 상세한 가치평가 내역이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장형진 영풍 고문, 영풍 측 요청도 묵살했다고 합니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고, 장형진 고문은 고려아연의 기타 비상무이사로 이사회 구성원인데 투자 대상 회사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거죠.
물론 회사가 본업과 상관없는 분야에도 투자할 만하다, 유망하다 하면 투자할 수 있는 거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혹은 분석을 꼼꼼하게 해 봤는데 유망할 것 같다 그렇게 판단해서 투자한 게 아니라 단지 친분 때문에 투자한 거라면 문제가 되죠. 그런 투자에 이사회가 찬성했다는 거에도 MBK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
최윤범 회장이 추석 연휴 기간에 일본도 가고, 홍콩, 싱가포르도 가서 투자할만한 곳들을 만나고 왔다고 하는데 접촉하고 있는 대상으로 일본 소프트뱅크 얘기도 나왔고 협력업체인 일본 스미토모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일본 소프트뱅크나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 같은 FI들로부터 지원받아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것.
아니면 일본, 유럽, 호주의 원자재 공급업체나 협력업체들이 투자자로 나서는 방안.
그런데 지금 고려아연 주가가 많이 올랐고 대항 공개매수 가격은 이보다는 높아야 하는데 보통 이런 경영권 분쟁이 끝나면 주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니 높은 가격에 투자에 나설 이유가 있을까요. 손실일 게 뻔한데요,
소프트뱅크나 베인캐피탈 같은 FI들은 투자한 것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 거라고 보고 있고 최윤범 회장이 이런 손실을 보전해 줄 재무적 여력은 없으니 투자로 과연 이어지겠냐는 의문이 드는 거죠.
결국 투자를 하더라도 나중에 최 씨 일가 지분까지 합해서 경영권 매각에 나서지 않겠냐는 건데 그렇다면 지금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를 유치하는 거에 대한 명분이 사라집니다.
고려아연 지분 일부를 갖고 있는 트라이피규라, 글렌코어 일본 스미토모 같이 고려아연 납품업체나 협력업체들이 높은 가격에 지분을 매수해 주는 방안의 경우 투자금 회수가 급하진 않죠.
그러나 이렇게 비싼 가격에 들어온다면
나중에 납품가 등에서 고려아연이 불리해질 수 있어서 배임 여지가 있다고 MBK가 먼저 경고를 했어요. 최 씨 일가의 경영권 지키기를 위해 회사의 장기적인 이익을 훼손하면 배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MBK가 외국계라서 안된다고 반대했었는데 그렇기에 외국계 사모펀드나 투자사들을 끌어들이기도 어려워요. 최씨 일가의 MBK 반대 논리가 자충수가 된 셈입니다.
고려아연의 기자간담회에서는 공개매수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그냥 그동안 주장했던 얘기를 반복한 수준. 기자간담회를 왜 했을까 싶기도 했네요. 발표자가 이제중 부회장, 최고기술책임자(CTO)이니 기술에 대한 얘기, 그리고 중국계 자본이라는 프레임 반복. 시장에선 어떻게 우호지분을 확보할 것인가, 어떻게 공개매수에 대응할 것인가를 기대했는데 그런 건 없었으니. 오히려 역효과만 난 듯해요. 발표자가 최윤범 회장도 아니었고, 재무나 기획파트 담당자도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긴 했죠.
최 씨 일가가 주식담보대출을 총동원해도 공개매수 자금 2조 원을 마련하기는 어려워 보여요. 최 씨 일가 지분은 15.6% 수준이고 고려아연 주가 급등하기 전 수준에 담보비율 40%를 적용하면 최씨 일가가 주담대로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은 최대 5000억 원.
그런데 일각에서는 최 회장 측이 백기사를 모아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해 고려아연 주가를 끌어올려서 공개매수를 실패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냐 이런 시각도 나옵니다. 진짜로 자금을 마련해 공개매수에 나서는 게 아니라요.
실제로 공개매수 선언 이후 줄곧 오르던 고려아연이 23일 1.63% 떨어졌고, 24일에는 70만 원도 깨진 데에는 이런 분석도 작용한 듯합니다.
사실 투자은행 업계에서는 투자유치가 완료되기 전에 누굴 만나서 어떤 논의를 했다고 공개하거나 인정하는 일이 드물어요. 확실히 딜 던(Deal Done)이 되기 전까지는 상호 간 비밀을 유지하는데 고려아연 측에서는 계속 누굴 만났고 누구와 논의를 했다는 걸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니 그저 주가 끌어올리기 위한 거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도 드는 거죠.
지금 그동안 최 씨 일가 우호지분으로 거론됐던 현대차, 한화, LG화학 지분들. 이들 기업이 최 회장 지지 의사를 밝히거나 의결권을 어떻게 행사하겠다 이런 입장을 전혀 내비치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우호 지분이라면 최윤범 회장과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등 공동행위 주요 주주로 공시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고, 해당 기업들은 비즈니스 파트너십에 대해서만 공시했어요.
이런 상태에서 만일 기업들이 최 회장과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는 우호세력이라면 5% 공시룰 위반이라서 지지를 선언하긴 힘들 듯해요.
지금으로서는 최 회장이 자금조달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다소 제한적. 국민연금이 최 회장 편을 든다고 해도 7.8%니까 최 회장 일가 지분 15.6%를 합쳐도 24% 정도 되는 건데 장 씨 일가 보유지분이 33.1%니까 여기에 못 미치는 거죠.
아직 MBK는 공개매수가를 높일 계획은 없다고 하는데 주가는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고요. 공개매수에 응한 지분이 7%가 안 되면 매수를 안 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더라도 지분싸움을 통해 이사회 장악을 시도하거나 한다면 현재로서는 최 씨 일가보다는 장 씨 일가가 더 승산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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