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이 도입된지 1년이 지났는데 수익률 놓고 말이 많다고 합니다. 나의 노후를 위해 3층 연금구조를 만드는게 중요해요. 국민연금은 기본으로 깔고, 그 위에 퇴직연금을 얹고, 마지막으로 개인연금을 더해서.
그러면 60세 정도에 은퇴한다고 가정하면 그럭저럭 원하는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물론 건강과 관련한 큰 이벤트가 있을테니 목돈도 있어야 하고요.
나의 노후 목표는 여행 가고 싶을때, 골프 치러 가고 싶을때 망설이지 않고 갈 수 있을 정도의 현금흐름입니다.
그러려면 이 3층 연금구조를 잘 쌓아야하고 그 연금 수익률을 높여야 하는데요. 국민연금 수익률은 나의 노력이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게 아니고 나오는 금액이 정해져 있는 거라 논외로 하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달라요.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노후에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지니 꼼꼼하게 따져보고 운용해야 합니다.
특히 퇴직연금은 DC형으로 가입해놨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들여다보고 운용지시를 내려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아요. 저도 국내 주식형 펀드 두 개에 계속 넣고 있고 IRP 같은 개인 연금도 처음에 지정한 실적배당형 상품에 계속 투자되게끔 하고 있네요. 반성해.
이 와중에 퇴직연금 관련해서 디폴트옵션에 아직 가입하지 않았다고 가입을 권유하는 문자나 톡 많이 받았을 거에요. 디폴트옵션 가입해야 할까, 말아야할까. 아직 가입하지 않았는데 얼마전 고용노동부에서 낸 수익률 자료를 보니 어랏, 이건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뜯어보니 좀 황당하긴 하더군요.
디폴트옵션, 사전지정운용제도라고도 합니다.
확정기여형(DC)형, 그리고 개인형퇴직연금(IRP)에 가입한 근로자가 상품이 만기된 이후에 특별한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을 자동으로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 지난해 7월12일 도입됐고 1년이 좀 지난 상태인 거죠.
디폴트옵션을 지정한 가입자수가 약 565만명.
이들이 적립한 퇴직연금이 약 33조원.
미국, 호주 등 선진국은 이미 다 도입한 거래요. OECD 국가 중 디폴트옵션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 체코,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정도 밖에 없다고 하니 이거 진짜 좋은 제도인가 싶죠.
41개 퇴직연금 사업자가 총 305개 상품을 만들어 판매, 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가 퇴직연금이 워낙 수익률 낮은 원금보장 상품에 몰려 있어서 수익률을 높이고자 도입한 건데 1년 지나서 보니 적립금의 89%가 원금보장형인 초저위험 상품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디폴트옵션 도입 전 퇴직연금에서 초저위험 상품 비중이 87% 정도였는데 더 비중이 늘어난 거에요.
왜 그럴까요. 상품의 위험등급이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으로 나뉘는데 가입자한테 이 중 하나 선택하라고 하면 심리적으로 위험이 낮은 대신 수익을 내기 어려운 위험회피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디폴트옵션에 가입한 대다수 가입자들의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실제 1년 이상 운용한 디폴트옵션 수익률을 등급별로 보면 초저위험은 3.47%로 은행 예적금 금리 수준, 저위험이 7.51%, 중위험이 12.16%, 고위험이 16.55%로 확실히 리스크를 감수할 수록 수익률은 높아져요.
지난달 13일에 고용노동부, 금융감독원 낸 자료를 보면 1년 이상 운용된 디폴트옵션의 연 수익률이 10.8%를 기록했다고 기록돼 있네요. 이건 지금 판매, 운용되고 있는 디폴트옵션 상품 305개인데 이 중 1년 이상 운용된 상품의 수익률을 단순 평균한 수치입니다.
좀 이상한게 고용부가 작년 8월에 발표한 일반 퇴직연금의 2023년 한해 수익률을 보면 연간 수익률이 평균 5.26%였거든요.
물론 전체 퇴직연금 규모가 383조원, 훨씬 크고 수익률 산정 기간이 작년 한해인 반면에 디폴트옵션은 작년 7월 도입 이후 1년간이라 대상 기간이 다르기는 한데 한번 생각해봅시다.
수익률 낮은 원리금보장형 비중을 보면 전체 퇴직연금에서는 87.2%, 디폴트옵션이 89%니까 더 높은데 어떻게 수익률은 5%대, 10%대로 두배 차이가 날까요. 뭔가 이상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발표한 디폴트옵션 수익률 갖고 논란이 일었던 건데요.
계산방식이 달라서였습니다. 디폴트옵션 상품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단순 산술평균한 수치에요.
예를 들어 1년 이상 된 상품이 305개다 하면 305개 상품의 수익률을 더해서 305개로 나눈 거죠.
반면에 전체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가중평균. 상품별로 수익률에 그 비중만큼을 곱해서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초저위험 상품의 수익률이 평균에 더 많이 반영되게, 비중이 낮으면 적게 반영되는 식이에요.
일단 뭐든 수익률을 비교해보려면 계산방식을 통일해야 하는데 문제는 제각각, 정부 입맛에 맞는 계산방식을 썼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자본시장에서 연기금이건 공제회건 운용 수익률을 계산할때 이런 식으로 단순 산술평균을 하진 않아요. 운용상품별 운용규모가 달라서 단순 평균을 내면 왜곡이 심하기 때문이에요.
해외에서 퇴직연금 수익률 낼 때 사용하는 표준 방식은 금액가중 수익률(투자성과 평가), 시간가중 수익률.(운용역량 평가) 중 하나인데 보통은 이 중 더 적절한 항목을 택해 발표합니다.
전체 퇴직연금과 같은 방식으로 수익률을 계산하면 디폴트옵션 수익률은 4.2%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와요. 당초 발표했던 수익률의 반토막도 안 되는 수준인 겁니다.
취재할때도 발표 전부터 고용부와 금감원이 수익률 산출방식을 두고 오래 논의를 했는데 공시 자체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 자체의 수익률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거라 단순평균값을 공시하자고 결론 내렸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분기 수익률을 발표할때에도 산술평균 방식을 썼고, 그때 보도자료에는 산술평균 방식을 썼다고 기재도 했다고 해명.
해명자료에서도
=>공시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작년 1분기 최초 공시 이후 일관되게 디폴트옵션 개별 상품의 수익률과 산술평균한 값을 제공해왔다,
=>상품 자체의 객관적인 수익률을 보여줌으로써 가입자가 자신의 디폴트옵션 운용 수익률과 비교해 투자위험 성향에 맞게 적극적으로 상품을 지정, 운용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기 위한 취지다.
가입자에겐 사실 이 수익률이 가장 민감한 부분인데 이 문구를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만일 금융사가 이런 식으로 단순 산술평균해 수익률 발표했으면 금감원이 나서서 금융소비자법 위반이라고 제재하지 않았을까요. 이건 분식회계에 가까운 처사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었고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표현을 쓴 사람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디폴트옵션은 주식투자 비중을 높여서 연 8%의 수익률을 내는 미국 퇴직연금 제도를 모델로 삼아 노후 대비를 좀 더 꼼꼼하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거에요.
사실 디폴트옵션 도입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던 게 원리금 보장 상품을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였거든요.
은행이나 보험사들은 적극 넣어야한다고 주장했고 증권사나 운용사 같은 금융투자업계는 적극 반대했죠.
이 쟁점 때문에 논의가 길어지고 도입 시기가 늦춰지니까 금투업계가 일단 제도시행을 하고 보자 하면서 한발 양보하고, 그래서 도입된 건데 1년 지나고 나니 가중평균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디폴트옵션 수익률이 4%대 밖에 안 나오는 상황인 겁니다. 원리금보장 상품으로의 쏠림이 심하니 그럴 수밖에요.
사실 미국이나 선진국에서는 디폴트옵션 상품에 원리금 보장 상품이 포함돼 있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디폴트옵션 제도의 설계부터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지적 나올 수밖에
게다가 지금 금리인하 시점을 논의하고 있어 원래금보장 상품 비중이 높은데 금리인하에 나서고 금리 떨어지면 수익률도 떨어질텐데 노후가 더 불안해지는 셈.
정책 도입의 성과를 과대포장하는 느낌을 넘어서 사실상 정책 도입 효과를 내지 못하는 설계 실패인 건데 이를 덮기 위한 조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 하죠.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 자체가 가입자들 무관심, 금융지식 부족으로 퇴직연금 운용방법을 지정하지 않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몰리면서 수익률이 떨어지는 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 그런데 오히려 원리금보장상품에 더 몰리는 결과.
그런데도 수익률 발표한 보도자료 제목이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 시행 1주년!!
연금자산의 건전한 축적을 견인하다
수익률 얘기에 더해서 가입자가 실적배당형 고위험 상품을 선택하거나 시장 상황에 맞게 디폴트옵션 상품을 변경해서 수익률을 크게 높인 사례 2개를 넣었는데 대부분 실적배당형으로 변경해서 수익률 높인 것. 전체 수익률을 호도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서 규정에는 금융사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거나 단일 상품을 추천한다고 돼 있는데
포트폴리오라는 건 금융사가 관리를 해주는 것을 말하는 건데요. 계좌 자체를 통합해서 운용한다거나 지속적으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리밸런싱한다든가 그래야하는데 지금은 디폴트옵션 상품 2개를 추천해주고 그만인 상황.
그 추천한 상품 2개를 고객이 가입하면 금융사에서는 하는 일이 없고, 그런데 수수료는 계속 내야 하는.
금융사는 그냥 상품판매에 따른 수수료만 챙기고 그 다음에는 만기가 될때까지 나몰라라 하는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국민의 노후 자금을 갖고 금융사는 장사하는 거라는 비판이 나오는 거죠.
지금 법을 개정해서 원리금보장상품을 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고
'타깃데이트펀드(TDF)·밸런스펀드(BF)·스테이블밸류펀드(SVF)·사회간접자본(SOC)’
이런 원리금 비보장 상품을 좀 더 효율화하는게 그나마 대안이라면 대안이랄까.
TDF는 연령대에 맞게 위험자산 비중을 알아서 조절해주는 펀드.
BF는 여러 자산에 분산 투자하고 주기적으로 위험 수준을 통제하는 펀드.
이런 펀드 가입을 적극 유도하는 거죠.
그리고 어차피 가입자가 사전에 지정한 유형으로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가입자 교육도 중요한데 금융사들 번 돈으로 교육에 좀 투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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