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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증시 흔드는 엔캐리 트레이드, 왜 청산되기 시작한 걸까

경제 흐름, 그리고 이슈

by laissezfaire 2024. 8. 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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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전쟁 난 거 아냐? 아니 증시 왜 이래. 내 삼성전자, 내 애플, 알파벳.. 

5일 증시는 국장이나 미장이나 패닉이었어요.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않은, 코로나19 팬데믹 못지않은 패닉이었는데 

 

그래도 6일은 다행히 코스피 상승출발했습니다. 

어제 증시 왜 이랬을까. 거론되는 악재를 보면 중동 전쟁 확전 리스크, 엔비디아 블랙웰 연기 리스크, AI 거품론 등 다양한데 가장 크게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건 지난주 금요일에 나왔던 미국 경제지표였던 것 같아요. 예상을 밑돌았던 미국 제조업 재표, 고용지표, 그로 인한 경기침체, 혹은 둔화 우려. 그야말로 R의 공포가 시장을 지배한 거죠. 

 

그런데 그건 펀더멘털 얘기고 수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게 바로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입니다. 엔캐리트레이드가 뭔데 이렇게 글로벌 금융시장을 쥐고 흔드는 걸까요. 

 


엔캐리트레이드가 뭐길래


캐리트레이드는 원래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서 주가가 오를 것 같은 주식에 투자했을 때 차입비용을 상환하고도 추가 수익을 실현하는 투자행위를 말하는 건데요. 이때 수익률이 차입금리보다 높으면 포지티브 캐리라고 하고 수익률이 차입금리보다 낮으면 네거티브 캐리. 누구나 포지티브 캐리를 하겠죠. 

 

사실 돈이라는 게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에요. 내가 돈을 갖고 있다면 금리 높은 곳에 투자하는 선택을 하는 건 당연한데, 금리가 낮은 곳에서 돈을 빌려서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하면 내가 돈을 갖고 있지 않아도 캐리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됩니다. 

 

각국의 금리가 다르니 이런 전략이 가능한 건데, 예를 들어 제로금리인 일본에서 엔화로 대출을 받아요. 대략 0.1% 정도 이자를 내야 한다고 칩시다. 그렇게 빌려서 연 이율 10%인 브라질 국채를 사는 거예요. 환율에 따른 손익은 있겠지만 이것도 환헤지를 해둔다면 환헤지 비용을 뺴고도 그냥 앉아서 금리를 먹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간 대표적으로 금리가 낮았던 국가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엔캐리트레이드가 캐리트레이드의 대명사격이 됐던 겁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 버블이 붕괴된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면서 일본은 계속 제로금리였어요. 심지어 단기금리를 마이너스로까지 내리기도. 

 

이때부터 엔캐리 트레이드는 계속 있어왔는데요. 거창하게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대거 엔화 차입해서 고금리 국가에 투자하고 이런 걸 상상하잖아요. 사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엔캐리 투자가 인기였어요. 

 

가정에서 경제권을 쥐고 여기저기 투자도 하는 주부들, 각국의 흔한 성씨로 만든 별칭도 있었는데 

일본에선 와타나베 부인, 유럽은 소피아 부인, 미국은 스미스 부인, 중국은 왕 씨 부인, 한국은.. 복부인?

 

여하튼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와타나베 부인이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전업주부들이 고위험 해외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붐이 일었던 거죠. 워낙 일본 증시도 지지부진하고 금리가 낮아 은행에 돈 넣어놔도 이자가 안 붙으니 주부들이 싼 이자로 엔화를 대출해 이자율 높은 해외 금융상품 투자에 나섰던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각국이 금리 낮춰서 경기부양에 나섰다가 풀린 유동성 때문에 물가 고삐도 풀리고 이 물가 잡겠다고 금리 올렸잖아요. 

 

미국, 유럽, 한국 등이 죄다 통화긴축에 들어섰는데 일본은 물가가 안 오르니 계속 마이너스 금리. 그런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서 금리가 높은 미국 등에 투자하는 엔캐리트레이드가 거세진 거죠. 

 

이런 엔캐리트레이드가 이제 청산되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는 건데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달러엔 환율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엔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는 이유


일본은행 때문이에요.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일본은행이 금리인상에 나선 게 지난 3월, 단기 정책금리가 -0.1%였는데 이걸 0~0.1%로 유도하겠다고 공표했어요. 

 

그때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린 건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이었고,마이너스금리를 해제한 건 2016년 2월 이후 8년 만이었습니다. 

 

금리를 마이너스라는 건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기는커녕 돈을 내야 하는 거라 돈을 갖고 있으면 손해니 기업에 적극 대출해 줘서 경기가 살아나도록 하자는 취지. 디플레이션 탈출이 일본에겐 절체절명의 숙제 같은 것. 그때 국채는 물론이고 상장지수펀드, 부동산투자신탁(리츠)까지 매입하면서 돈 풀었어요. 

 

그래도 꿈쩍 않던 물가가 지난해 3.1% 오르면서 198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어요. 올 들어서는 일본의 임금도 오르고 하니 이제 완화정책은 종료하겠다 선언하고 3월부터 긴축으로 돌아선 겁니다. 

 

이렇게 금리인상을 시작하니 엔케리 청산 움직임도 시작된 거죠. 

 

 

일본은행(BOJ)


올려도 일본 금리는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데


사실 이렇게 올렸는데도 제로금리. 이자를 거의 받을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지난달 31일 BOJ가 단기금리를 또 0~0.1%에서 0.25%로 인상했어요. 생각보다 빠르게 금리를 확 올린 거죠. 

 

아울러 엔캐리 청산 우려는 곳곳서 나오기 시작했어요. 큰 손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바로 일본 공적연금(GPIF)입니다. 일본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에요.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들고 있는 나라인데요. 일본 정부가 엔저를 막기 위해 일본공적연금의 달러자산을 팔아 엔화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7월에 나오면서 엔캐리 트레이드를 했던 투자자들도 불안 불안해지기 시작한 거죠. 

 

왜냐하면 환율 때문이에요. 일본공적연금이 움직이면 엔화 가치는 오를 것이고 달러값은 떨어질 텐데 엔화를 빌려 달러 자산에 투자한 캐리트레이더들은 빨리 청산해서 엔화 갚지 않으면 갚아야 할 엔화 규모가 커질 거고, 보유하고 있는 달러 자산의 가치는 떨어질 테니까요.  

 

일본공적연금은 운용 규모만 1조 5000억 달러에 달하고, 노르웨이, 한국의 국민연금과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에 꼽혀요. 자산 절반이 해외자산과 채권인데 7월 BOJ가 금리를 올리고, 자산축소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적연금이 움직이기 시작한 계기가 아니겠나 하는 분석도 나옵니다. 실제 7월 BOJ의 금리인상 후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 

 

반면 미국은 지금 9월부터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높아요. 현재 미국 기준금리가 5.25~5.5%인데 주말 제조업 지표, 고용지표 나온 후에는 9월 인하폭이 베이비컷이 아니라 빅컷, 0.5% 포인트일 것이라는 전망도 높아진 상태. 여기서 더 나아가 제레미 시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경영대학원 교수는 임시 FOMC를 열어 0.75% 포인트를 낮추고, 9월 정례 FOMC에 추가로 0.75%포인트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지금 미국 경제상황을 보면 미국 기준금리가 3.5~4%에 있어야 한다고. 

 

그래도 일본 정책금리보다는 높지만 BOJ는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뒀으니 양국 금리차이는 계속 좁혀질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엔캐리 트레이드 수익은 줄어들게 뻔하고, 엔화 강세 달러 약세 상황이면 환손실도 불가피하니 빨리 다른 나라 자산 팔아서 엔화를 갚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거죠. 

 

7월 31일 BOJ가 금리 올렸는데 올리기 전날 154엔대였던 달러엔 환율이 간밤에는 141엔대까지 하락. 엔화가 그만큼 초강세인 거죠. 


엔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얼마길래


사실 돈에 꼬리표가 달린 게 아니라 딱 얼마다 하는 명확한 통계는 없는 듯. 추정치만 있는데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추산하기로는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엔캐리 자금 규모가 총 38조7000억엔, 한화로 370조 원 좀 넘는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엔캐리가 주로 일본 내 외국계 은행이 본점으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작년 한 해 외국은행 일본 은행이 본점으로 송금한 자금은 137조 엔 정도라고 하는데요 한화로 1300조 원이 넘는 규모. 

 

국제결제은행 자료를 보면 가장 최근에 엔캐리 트레이드가 본격화한 게 2021년 말 이후부터인데 국경 간 엔화 차입은 7420742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화로 하면 1013조 원 정도.

 

도이체방크가 분석한 자료 보면 1990년대 이후 누적된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총 20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 한화로 보면 2경 7200조원 정도. 경 단위를 넘어가기도 하네요. 

 

이렇게 쌓인 엔캐리 트레이드가 과거에 청산되면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된 적은 3차례 있었는데요.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으로 인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 이때 위기를 느낀 일본 은행들이 헤지펀드에 대출 상환을 요구하면서 엔캐리 청산.

△2001년 닷컴버블,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이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엔캐리 청산.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지기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때에도 청산.

 

이때 주가 급락과 미국 금리인하가 동반되면서 엔캐리 청산을 부추겼고 자산가격 변동성이 더 확대됐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과거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시 코스피 하락폭 평균 31.62%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분간은 일본과 미국 통화당국에 시선 집중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진정될 것이냐, 고조될 것이냐. 경제지표를 좀 더 지켜봐야 할 텐데 그래도 간밤 ISM 서비스 PMI 지수가 비교적 잘 나왔네요.  50을 넘어서 확장국면에 있다는 소식에 경기침체 우려는 다소 진정된 듯하고요.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하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달러 지수 하락세가 진정되면 추가적인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도 낮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BOJ 책임론도 확산하면서 반성문 쓰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오는데 일본은행 역시 금리인상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까는 물음표예요. 그러려면 일본 경기가 회복세를 이어가야 하고, 금융시장 변동성도 줄어야 하는데 글로벌 금리인하 추세에 일본은행이 추가로 금리를 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나 하는 거죠.

 

이미 엔화 환율이 올해 초 수준인 달러당 140엔에 근접해 있고 블룸버그 달러-엔 캐리 수익 지수는 현재 연초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라 물론 엔화 환율이 130엔대에 진입할 가능성은 있지만 현 수준에서 더 크게 엔화가 강세를 보이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도 속도조절을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미국 연준과 일본 BOJ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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