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상법 제382조3이 이사의 충실 의무에 관한 거예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회사뿐 아니라 주주도 넣어서 개정하자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같은 상법개정안은 당론으로 채택하고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상법 개정안을 보면 이사충실 의무에 주주를 넣는 것뿐 아니라
2항에는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상장사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라는 의미로
이런 독립이사를 이사 총수를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비율을 상향하는 안도 담겨 있고요.
독립이사들이 선출될 수 있도록
이사 선임 과정에서 집중투표제 도입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때 각 주주가 이사수만큼 의결권을 받아
한 사람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하는 것. 소액주주 의결권 강화하겠다는 거죠.
주총에 주주들이 더 쉽게 많이 참여할 수 있게 전자주주총회를 병행하는 방안을 의무화하고
분리선출 감사위원 이사수 확대하는 방안도 담겨있습니다.
국민의힘은 반대하고 있는데요.
기업 먹튀 조장 법안이자 자해적 법안이라고 반발하는 상황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왈,
"사실 주주는 외국 투자자, 기관 투자자, 단기, 장기 투자자, 투기 자본이 섞인 투자자 등 구성이 매우 다양한데, 모든 주주의 의견이나 권리를 균등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 모든 주주를 충실의무 대상으로 넣을 경우 많은 혼란스러울 것"
김상훈 국힘 정책위의장도 "상법개정안 통과될 경우 수시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고발과 수사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어요.
최근에는 한국경제인연합(옛 전경련)과 국내 주요 기업 16곳 사장단이 상법개정 추진 저지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공동성명을 낸 건 전경련 시절인 지난 2015년 7월 이후 9년여만.
당시에는 메리스로 내수침체 등 어려웠던 상황이었는데
이번에도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은데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 더 어려워진다고 호소하는 거죠.
경제상황 녹록지 않은 건 맞습니다.
내수는 도통 살아날 기미 보이지 않고
그나마 버텼던 수출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하면 고관세 등으로 글로벌 무역전쟁 일어날 거고
그간 우리 경제 주력 산업이었던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수출산업 어려워질텐데
이런 상황에서 상법개정안까지 통과되면
소송 남발될게 뻔하지 않냐는 것.
소송 대응하다가 제대로 경영도 못할게 뻔하고
해외 투기자본 공격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사법리스크를 안고 누가 기업 사외이사를 하겠냐.
그러면 이사회 구성이나 이사회 운영도 어려워지지 않겠냐는 주장도 하고 있고요.
결국은 이렇게 상법을 개정하면
기업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테고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증시 밸류업이 아니라 밸류다운이 될 것이라는 게 경영계 입장이에요.
회사를 위하여가 우리나라에서는 오너 일가, 지배주주를 위하여 의사결정을 하니..
이사회는 오너나 경영진의 경영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사실 이사회 대부분이 오너의 특수관계인인 사람들로 채워지고
오너의 지배권을 위해 이사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우리나라 이사회는 거수기라는 오명을 달고 있죠.
이런 게 대한민국 상법상 '이사회는 회사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상법 때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삼성물산의 제일모직 합병 시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합병비율을 정하는 바람에
오너 일가는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지만
삼성물산 주주들은 피해를 입었고요.
LG화학 배터리 사업부 분할해서 LG에너지솔루션으로 주식시장에 상장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주주들은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 미래를 보고 투자했을 텐데
물적분할해서 핵심 사업부를 떼어내고 그 회사를 다시 상장했잖아요.
이건 중복 상장인 건데
이 사례에 대해 외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이한 사례라고들 평가했어요.
물적분할 후에 LG화학 기업가치 크게 하락했고 주주는 손해를 봤어요.
최근에는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이 대표적인 사례에요.
두산에너빌러티 아래 있던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두산그룹 오너 일가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주사인 두산을 통해
알짜기업인 두산밥캣 지배력을 확대해
대주주 이익만 극대화하려 한다는 비난이 제기됐습니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지키기 위한 유상증자도 마찬가지예요.
유상증자 자체도 주식 공급이 많아지는 거라 주가에 악재인데
예를 들어 신사업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설비투자가 필요하다면 모를까
심지어 이건 현 경영진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추진하는게 너무 뻔했거든요.
결국 철회하긴 했지만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주가 하락했죠.
당시 주가가 150만원 정도였는데 유상증자 67만원에 하고
그것도 일반공모로 하면서 20%를 현 회장 측에 의결권을 행사할
우리사주조합에 우선배정하면
고려아연 기존 주주들은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죠.
이게 다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사안인데
이사회가 이런 의사결정으로 주주들의 손해를 유발했을 때
현재 상법상으로는 배임행위로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서 상법에 "회사를 위하여" 이 부분을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로 바꾸자는 요구가 나온 겁니다.
21대 국회때도 이용우 의원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로 바꾸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었고
박주민 의원은 ‘회사와 총주주’로 바꾸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발의했는데 통과되지 못하고 21대 국회가 끝났어요.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오너 일가가 자초한 면이 큽니다.
지분 10% 안팎으로 이사회를 좌지우지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렇게 크지 않은 지분으로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회사처럼 운영한 원죄라고나 할까요.
이런 거수기 이사회, 그로 인한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이게 사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지배주주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유인은 높은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약한 구조인 거죠.
이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서 이사회 분위기가
그래도 좀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거수기인 곳들 많고
우리나라 상장사 보면 보통주 대비 우선주 괴리율이 50%에 달하고
지주회사 주식은 계열사 주식에 비해 60% 이상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곳이 한국이에요.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으니 보통주 가격보다 낮은 게 맞는데
독일이나 미국은 보통 3%, 10% 정도 차이가 나는 반면에
한국은 50%씩 차이가 나는 건 그만큼 의결권에 대한 가치를 쳐주는 셈이거든요.
지배주주가 그 의결권을 가지고 회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고, 어찌보면 전횡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이사들이 견제하는 역할을 전혀 못 하는 거죠.
주식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이에요.
주주는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주주권을 행사하는 거고,
사실 지배주주는 다른 주주들에게 충실의무를 가져야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문제가 됐던 사례들이 대부분 장기적인 비전에서 회사를 위한 경영판단을 했는데 소액주주들이 반발했다?
이런 게 아니라 ‘기망적 행위’나 이에 버금가는 ‘배신적 행위’ 수준이었다는 점이 문제였어요.
그러니 이사가 회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회사와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게 맞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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